혁신은 유레카 아닌 점진적 발전
기술·제조·보급 맞물려야 혁신 완성
생태계 관점에서 혁신 투자 재점검해야

혁신은 발명이 아니다. 가짜 혁신에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지 않기 위한 출발점이다. 가짜 혁신은 급진적이고 파괴적인 것이 혁신이라는 포장으로 여론을 호도한다. 하지만 혁신은 점진적이고, 파괴는 제품이 아닌 프로세스에서 이뤄진다. 무엇보다 혁신은 시장을 창조하는 과정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누리며 상호의존성을 높이는 번영의 과정이다. 시장경제가 한정된 자원을 혁신에 배분하는 이유다.

종종 발명자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찾아냈지만, 영예나 이득을 누리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 역시 혁신을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다. 그 발명이 적당한 가격으로 실용화해 실제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혁신이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지 간과한 것이다. 가장 영향력 있는 신기술도 보잘것없고 값싸게 구현될 때 사회적 공감도가 높아진다. 인공지능과 로봇틱스가 결합된 휴머노이드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관심사는 고도의 복잡성보다 적절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지 여부다. 유사한 사례는 많다. 증기기관을 발명한 것은 뉴커먼이지만, 산업혁명의 주인공은 이를 실용화한 제임스 와트로 기억된다. 사실 자본주의의 많은 성과물은 부자에게 의미 있을 법한 무언가가 아니다. 전등은 양초를 충분히 구입해 하인들에게 들고 있게 할 수 있는 부자에게는 별 다른 혜택을 주지 못한다.

이러한 혁신은 다른 기술들의 재조합으로 구현된다. 자율주행, 페이스북, 스마트폰 모두 기존 기술의 단순한 조합이다. 새로운 기술은 기존 기술의 조합으로 가능하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만나서 상품과 서비스, 생각을 교환하는 곳에서 혁신이 이뤄진다. 혁신은 언제나 교역과 교환이 잦은 곳에서 일어난다.

또한 혁신은 언제나 점진적이다. 갑자기 한 번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유레카의 순간은 드물고 어쩌면 아예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유레카의 순간이라고 인정되는 것도 모든 일이 지난 뒤의 깨달음이고, 그 과정에서의 수많은 실패는 언급되지 않는다. 이는 오늘날 인공지능의 발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속도는 빠르지만 분명 점진적이다. 콕 찍어서 어느 날부터 인공지능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초기 자동차도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마차, 증기기관, 자전거와 같은 앞선 기술을 닮아 있다. 거의 예외 없이 인위적인 기술이 더 인위적인 기술로부터 진화하며, 맨땅에서 발명되지 않는다.

결국 혁신은 단체 스포츠다. 고독한 발명가, 외로운 천재는 혁신에 어울리지 않는다. 협력과 공유가 혁신의 핵심이다. 누군가는 기술적 돌파구를 열고, 누군가는 실용화할 제조법을 찾고, 누군가는 대중에게 퍼지도록 결과물을 저렴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아내는 식이다.

이 과정은 혼자 힘으로 불가능하다. 기업 간 그리고 정부와 기업의 협력, 협력을 유인하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데이터 협력은 그중에서 가장 서둘러야 하는 분야다. 자국 인공지능 기술을 확보하더라도, 이 기술에 매력을 느낀 다양한 주체들의 자발적 협력으로 구축된 생태계가 없으면 혁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인공지능 기술도 예외가 아니다. 생태계 차원에서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지 정의돼야 한다. 혁신이 기술이나 인프라 혁신에만 국한돼서는 성공할 수 없다. 혁신과 생태계 관점의 부재는 막대한 자원의 낭비로 이어질 뿐이다. 이제 더 이상 가짜 혁신에 허비할 여력이 없다. 오늘날 기업과 정부가 추진하는 혁신 혹은 전환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지는 많은 투자가 진정한 혁신의 관점에서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