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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gehot의 진의: 역사적 맥락에 의한 최종대부자론의 재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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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 신인석(辛仁錫)
  • 발행일 2005/12/12
  • 시리즈 번호 2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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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금융제도에서 공적기구의 역할에 대한 논쟁은 19세기 경제학의 성립과 함께 시작되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주제이다. 1960년대 전후에는 통화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지배적이었으나 최근 들어 인플레이션은 안정된 반면 금융자유화와 함께 금융위기가 빈발하면서 공적기구의 위기관리기능 또는 ‘최종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기능과 관련된 논쟁으로 초점이 옮겨가는 추세이다. 현재 ‘시장실패 견해’, ‘중도 견해’, ‘자유은행 견해’ 등 세 가지 의견이 대립을 보이고 있다. 대립되는 세 견해의 논쟁에서 나타난 흥미로운 사실은 세 견해가 모두 자신의 이론적 기원을 19세기 후반 영국의 경제학자 Walter Bagehot의 저작 Lombard Street: A Description of Money Market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Bagehot 저작의 해석이 때로는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이는 세 가지 견해의 상대적 우월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Bagehot의 1873년 저작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점에 대한 착안이 본 보고서의 연구 동기이다.

Bagehot 최종대부자론의 정확한 이해를 위하여 본 보고서가 선택한 방법론은 Bagehot가 속한 역사적 공간의 분석이다. Bagehot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 영국 금융시스템의 변화와 그에 따라 제기된 문제의 내용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이다. 이를 위하여 먼저 19세기 중반 영국 금융경제의 환경변화를 점검한다. 본 보고서가 주목하는 환경변화는 두 가지이다. 국제금본위제의 확립에 따른 금융의 세계화, 즉 자유로운 국제자본이동의 활성화가 첫째이고, 부분지불준비금제도에 근거한 예금은행제도의 등장과 확산이 둘째이다. 환경변화로 인하여 영국경제는 금융의 대내적?대외적 불안정성을 세계 최초로 경험한다. 국제자본이동의 불안정성과 연계된 금융위기가 빈발하고 국내유동성 공급의 불안정성과 관련된 큰 폭의 경기변동이 발생한다. 이에 19세기 영국의 경제전문가들은 유동성 창출과 이동이 자유로운 국내외 금융질서 아래 경기안정을 위한 통화정책방안의 마련, 금융위기에 대응한 금융안전망의 마련이라는 주제를 역사상 최초로 고민하게 되었다는 것이 본 보고서의 해석이다.

이러한 정책과제에 직면하여 당시 경제전문가들은 두 가지 대립되는 견해를 내놓는다. ‘통화학파(the Currency School)’와 ‘은행학파(the Banking School)’의 견해가 그것인데, 논쟁에서 승리하고 정책화된 것은 ‘통화학파’의 견해였다. ‘통화학파’는 당시 금융위기와 이를 포함한 경기순환의 근원에는 통화공급충격이 있었던 것으로 본다. 영란은행과 지방은행의 과도한 은행권 발행이 거품을 야기하였고 금융위기는 그 여파라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통화학파’는 경기안정과 금융안정을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으로서 영란은행을 포함한 은행들의 유동성 창출에 엄격한 준칙을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통화학파가 득세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당시 경제전문가들이 지니고 있던 핵심 문제의식에 부응하는 답변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의 영국은 금화 또는 은화가 통화로 유통되는 금속화폐제도에서 금화에 더하여 은행권, 예금통화 등을 기반으로 한 지폐통화가 공존하는 ‘혼합통화(Mixed Currency)제도’로 이행하는 시기였다. ‘통화학파’는 새로운 경제에서 경제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유동성 창조에 대한 규율, 즉 통화규율(Monetary Discipline)을 제도적으로 부과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보았다. 또한 통화학파의 기계적 통화정책론 주장이 패닉에 대비한 최종대부자 기능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제시된 것은 아니었다. 통화학파는 현대 금융경제학에서 일반화된 ‘동태적 비일관성(Time Inconsistency)’ 문제를 이미 의식하고 있었다. 일단 패닉 등 비상사태 발생의 경우 은행권 발행규칙 적용을 유예한다는 조항을 도입하는 순간 이에 대한 예상으로 도덕적 해이가 야기되어 과도한 통화공급 방지라는 통화규율의 정립 자체가 어려울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동태적 비일관성’ 문제를 풀 수 있는 답은 ‘사전적으로 예외적용을 규정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통화정책의 준칙 법규화’를 기본 요소로 하면서 ‘법규의 적용 유예가 필요한 상황에 대한 대응은 궁극적으로 법규 제정자인 의회의 감시 아래 정책당국이 직접 재량을 행사’하는 구조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법제화로 실용화되면서 통화학파 이론체계의 약점은 현저해진다. 예금통화의 중요성과 통화의 내생성 문제는 보다 시일을 두고 나타날 문제였으나 금융위기와 이에 대한 최종대부자 기능 발휘의 문제가 바로 현실화된다. 1847년, 1857년, 1866년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이에 대한 영란은행의 대응은 많은 이들의 불만을 야기한다. 영란은행은 유동성 공급을 조기에 확대하지 않았으며 금융시스템의 마비가 명확해지는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법적용이 일시 정지되고 은행권 발행이 확대되었다. 영란은행의 유동성 공급확대와 함께 위기는 진정되었지만 영란은행의 대응방식에 미흡함이 있다는 인식이 점차 커지기 시작한다. 이상이 1873년 Bagehot가 Lombard Street를 집필할 시점까지의 역사 전개였다.

Bagehot에게 당시 금융환경 변화의 정책적 시사점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패닉에 의한 금융위기의 위험 상승이었다. 특히 그는 국제자본시장의 통합을 강조하며 신인도 변화에 기인한 외환위기와 그로 인한 금융위기의 위험을 강조한다. 비록 강도가 높아졌지만 금융환경의 변화로 패닉에 의한 금융위기의 위험이 높아졌다는 이 인식은 ‘은행학파’의 그 것과 다르지 않으며 ‘통화학파’도 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또 Bagehot는 ‘통화학파’의 해법을 적용한 결과 영국경제의 위기관리 또는 최종대부자 기능이 극히 취약한 상황이 도래하였다고 진단한다. 이 진단도 그 자체로서는 ‘은행학파’에 의해 이미 제기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진단의 근거로서 그는 전혀 새로운 분석을 제기한다. ‘통화학파’의 금융위기 대응해법은 정부의 재량권에 ‘암묵적으로’ 이를 맡겨 두자는 것이었다. Bagehot는 이 대응장치가 ‘불확실성’을 낳아 패닉 금융위기를 조기에 진정시키기는커녕 악화시키는 효과를 낳았음을 지적한다. ‘통화학파’의 ‘동태적 비일관성’에 대한 해법이 지니고 있는 ‘암묵성’과 ‘불확실성’이 종국에는 위기관리를 가능하게 할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위기확산을 조장하여 위기관리비용을 키우는 효과를 갖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새로운 문제의식이었다. 새로운 문제의식에 기초하여 Bagehot는 새로운 정책방안을 제시한다. 영란은행에 정책목표를 투명하게 부여하고 지배구조를 개혁하자는 방안이다. 영란은행이 추구해야 할 목표가 통화규율의 달성과 더불어 위기관리 또는 최종대부자 기능 수행의 두 가지임을 전제한다면, 두 가지 목표의 추구는 분명히 ‘통화학파’가 강조했듯이 이론적으로 보아 ‘동태적 비일관성’의 문제를 야기할 소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현대 경제학은 정책당국이 책임져야 할 목표가 무엇인지가 일반대중에게도 명확히 인식되어 있다면 ‘동태적 비일관성’ 문제가 ‘평판(reputation)’에 의해서도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을 밝혀내고 있다. 이 ‘평판’메커니즘이 작동한다면 재량권 발휘의 신축성을 극히 약화시키는 준칙해법에 비하여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에서는 보다 우월한 결과가 얻어질 수도 있다. Bagehot는 바로 이 ‘평판’메커니즘에 의한 문제해결을 제안하였다.

이 같은 본 보고서의 Bagehot의 최종대부자론 해석은 현대 경제학의 세 견해 중 ‘시장실패 견해’의 Bagehot 해석과 일관성이 있다. 시장의 완전성과 합리성으로는 설명되기 어려운 현상이 중요한 측면을 구성하는 것이 금융시장의 특성이라고 믿는다는 점에서 Bagehot는 현대 ‘시장실패 견해’ 그룹과 생각을 같이한다. 또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금융환경에서 패닉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장치는 대응당국에의 재량허용을 원칙으로 하면서 도덕적 해이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유인구조 설계 등에 의한 해소를 추구하여야 한다는 점에서도 ‘시장실패 견해’ 그룹과 생각을 같이한다.

마지막으로 본 보고서는 Bagehot의 주장이 지니는 현대성을 언급한다. Bagehot가 오늘날에 전해주는 메시지는 두 가지이다. 국내적으로 금융시장이 자유화되고 국제적으로는 자본시장이 통합된 환경에서는 패닉에 의한 외환위기와 금융위기의 위험이 상존한다는 점이 첫째이고, 이에 대한 대응은 정책당국의 재량을 보장하면서 재량의 남용은 평판메커니즘에 의하여 제어되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점이 둘째이다. 이와 관련해서 그가 특히 강조한 것은 대응의 책임을 지는 기구를 명백히 하고 이 기구의 운영이 사적 이익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하여 왜곡되지 않으면서도 전문성과 연속성이 유지되도록 지배구조 설계에 유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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